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주가 밸류업과 가업 승계 등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은퇴를 앞둔 오너들이 고민이 많다”며 “최고 상속세율이 60%에 달해 가업 승계를 앞둔 오너들은 기업의 주가가 오히려 떨어지길 바라게 된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최대주주 할증까지 더하면 60%에 이른다. 일본의 최고세율이 55%이므로 사실상 한국의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셈이다. 고율의 상속세 국가인 프랑스(45%), 미국(40%), 독일(30%)의 최고세율과 견줘봐도 현격히 높은 편이다.
특히, 최근 한국 증시의 현안으로 떠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이 높은 상속세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총수 입장에선 가뜩이나 상속세율이 과한데 과세 기준이 되는 주가마저 높으면 세 부담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현행 상속세제는 2000년 세법 개정 이후 그대로다. 반면 해외에서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추세다.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각각 2005년과 2014년에 폐지했으며, 영국도 단계적 폐지 방침을 밝힌 상태다. 스웨덴의 경우 대신 상속인이 상속 재산 처분 시점에 내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또 상속세가 아직 있는 OECD 24개국 중 20개국이 ‘유산취득세’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상속인이 각자 취득하는 재산만큼 세율이 적용되는 유산취득세는 합리적으로 상속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한국의 법인세와 상속·증여세 체계는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적 세제와 더불어 세율 또한 유례없이 높은 경우가 수두룩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4단계 이상의 법인세 누진세율 체계를 가진 나라는 한국과 코스타리카뿐이다. 나머지 36개국 중 32개국은 과세표준액에 상관없이 단일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처럼 10%(과표 2억원 미만), 20%(2억원 초과), 22%(200억원 초과), 25%(3000억원 초과) 식의 다단계 누진 세율을 적용하면 대기업에 편중적으로 세금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과표 3000억원이 넘는 0.01%의 기업이 전체 법인세 세수의 41.0%를 부담하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법인세 최고 세율은 OECD 7위이고, 아시아 주요국 중에선 1위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종전 22%에서 25%로 높아졌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법인세율을 인상한 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선 6개뿐이다.
상속·증여세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고 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이다. 최대주주 주식할증평가 적용 시엔 60%로 세계 최고다. 일본은 상속 재산에 대해 공시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물리는 데 비해 한국은 시가에 근접한 기준으로 매겨 실제 세 부담은 일본보다 높다. OECD 국가 중 15개국은 상속세를 폐지했고, 미국의 상속세 면세점은 1158만달러(약 156억원)로 한국(10억원)보다 15배나 높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과세당국이 부과한 상속세에 불복해 납세자들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한 사례가 307건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치이자 1년 전보다 35% 증가한 규모다. 상속액의 최대 절반 이상을 국가가 떼어가는 현행 상속세 체계에 불만을 가진 납세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뜻이다.
상속세 분쟁이 급증하는 것은 2000년 세법 개정 이후 상속세제를 전혀 손보지 않은 탓이 크다. 24년 전이나 지금이나 과세표준이 5억 원 이하면 20%, 10억 원 이하면 30%, 30억 원 초과면 50%의 세율로 상속세를 물린다. 이 기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3배 이상 늘어나고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부유층뿐만 아니라 서울에 집 한 채 가진 중산층도 상속세를 부담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피상속인의 유산 전체에 세금을 매기는 상속세 과세 방식도 74년간 바뀌지 않았다. 징벌적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경영권을 해외 사모펀드 등에 넘기는 알짜 기업들이 속출하는 이유다. 최근 우량 제약기업인 한미약품의 경영권 분쟁도 오너 일가에게 부과된 5400억 원의 상속세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해외 주요국들은 상속세 부담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추세다. OECD 회원국 중 14개국은 아예 상속세가 없고 영국도 단계적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소득세를 낸 재산에 매기는 이중과세라는 점과 기업의 투자·고용 증가에 걸림돌이 된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경우 상속세 대신 상속인이 상속 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 세금을 물리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도 더 이상 ‘부자·대기업 감세’라는 낡은 프레임에 발목 잡혀 있을 여유가 없다. 24년째 그대로인 과표 구간과 세율을 조정하고 과세 방식을 손질하는 등 상속세 개편에 속도를 내야 한다.
세계 대부분 선진국은 법인세 및 상속·증여세 체계를 단순화하고 세율도 지속적으로 내리고 있다. 정부 여당의 개편안은 야당이 주장하는 부자 감세가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려는 세제의 정상화로 평가할 수 있다. 야당은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국민을 호도할 것이 아니라 세계 흐름에 맞는 국가·기업 경쟁력 차원에서 세제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해외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상속세율을 낮추는 이유는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의 경영권을 불안하게 하고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우리도 24년째 그대로인 상속세 제도를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 수술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가 밸류업을 위해서는 과도한 상속세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또 과도한 상속세로 인해 경영권이 흔들린다면 기업 가치에도 부정적이다. 그동안 진보·좌파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부자 감세’ 프레임 때문에 상속세 개편 논의는 헛바퀴만 돌았다. 그러나 현 상속세제를 그대로 둔 채 증시 밸류업이나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은 공염불일 뿐이다. 상속세율 낮추기와 자본이득세·유산취득세 등 합리적인 과세 제도 도입 방안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서울경제, 관련 기사, 2024.3.25./ 한국경제 , 2022.11.23./ 동아일보, 20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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