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의 경영목표가 ‘성장중심’ 경영에서 ‘지속가능’ 경영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속가능 경영이란 기업의 경제적ㆍ사회적ㆍ환경적 책임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진하는 경영전략을 가리킨다. 즉, 기업 경영을 보다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환경과 사회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 글자를 딴 단어이다. 이제는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서 제품만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Environment), 사회에 미치는 영향(Social), 기업의 지배구조(Governance)까지 모두 신경을 써야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이야기이다. ESG는 기업이 고객 및 주주, 직원에게 얼마나 기여하는가?, 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가?, 지배구조는 투명한가를 다각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단순히 재무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게 투자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투자를 위한 지표가 된다. 이는 품질 경쟁력이 앞선 기업보다 고객을 먼저 생각하고, 아낌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착한 기업을 선호하겠다는 것이다. ESG 경영의 최종 목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사회적 이익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적 공헌을 충실히 하는 기업의 하나로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을 들 수 있다. 그리하여 발렌베리그룹의 지속가능한 경영전략을 설명하고자 한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Wallenberg family)은 스웨덴의 금융가와 기업가로 알려진 가장 영향력있고 부유한 가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철학은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한다. 1856년에 해군장교 출신이었던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André Oscar Wallenberg)가 은행을 창립하면서 대재벌로서의 발렌베리 가문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발렌베리 가족은 1856년부터 기업서비스로 일했고, 1917년부터 스웨덴의 연구사업을 지원했다.
1970년대 발렌베리 가문의 기업체는 스웨덴 산업 인력의 40%를 고용했고, 스톡홀름 주식시장의 총 가치의 40%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그 비중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발렌베리를 유럽 최대의 산업 왕국 일가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창업자 세대는 기업을 설립하고, 2세대는 기업을 물려받고, 3세대는 기업을 파괴한다는 유럽의 속담도 발렌베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발렌베리그룹이 더욱 주목받는 것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뛰어난 다수 기업을 키워냈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모두 14개 핵심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에릭슨 등 11개 기업은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통해 지배하고, 스토라 엔소(Stora Enso) 등 나머지 3개사는 발렌베리재단을 통해 직접 지배권을 행사한다.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에릭슨(Ericsson)은 통신장비분야 세계 1위이고, ABB는 발전설비, 일렉트로룩스(Electrolux)는 가전제품, 스토라 엔소는 제지, SKF는 베어링 분야를 대표한다. 다른 자회사들도 큰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단일품목으로는 세계 1위 의약품인 위궤양약 로섹(Losec)을 개발했고, 샤브(SAAB)는 차세대 전투기 그리펜(Gripen)을 생산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과학을 기반으로 한 기업문화와 비전을 가진 스웨덴의 ‘아스트라 AB(AstraAB)’와 영국의 ‘제네카(Zeneca Group PLC)’의 1999년 인수 합병을 통해 설립된 다국적 제약회사이다.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에 크게 의존하는 것과는 달리, 발렌베리는 삼성전자에 버금가는 초일류기업을 여러 개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발렌베리는 가족중심의 소수 오너와 그들에게 충성하는 전문 경영인그룹, 다양한 업종의 많은 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점 등이 우리나라 재벌과 매우 비슷하다. 이는 서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례이다. 한마디로 발렌베리를 빼놓고는 스웨덴 경제를 이야기할 수 없다. 스웨덴의 다른 재벌 가문들이 무거운 세금을 피해 스위스로 빠져나갔지만, 발렌베리는 노벨재단보다 훨씬 큰 규모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고국 스웨덴의 첨단 과학기술연구를 후원하고 있다.
▣ 발렌베리가문의 스웨덴 경제 비중
스웨덴 최대기업 발렌베리 기업집단은 최대의 기업이지만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발렌베리집단은 스웨덴 주식시장의 약 40%,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익의 80%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발렌베리 일가는 금융, 건설, 항공, 통신, 제약 등 스웨덴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고 있고, 스웨덴 GDP의 30%이상을 차지하는 14개 대기업의 소유주이다. 소유기업 중에는 세계최대 통신 장비 업체인 에릭슨, 유럽 최대 가전 업체인 일렉트로룩스, 스웨덴 항공, 스웨덴 2위 은행인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SEB) 등이 있다. 그룹전체 종업원은 약 60만명이 넘어 스웨덴 전체 인구의 약 6%에 이른다. 삼성그룹 매출이 우리나라 GDP의 약 18%를 차지한다는 분석과 비교하면, 스웨덴 경제의 발렌베리 의존도는 훨씬 높다. 발렌베리 집단은 160년 동안 자신들만의 경영철칙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스웨덴은 1938년으로 극심한 노사분규 과정에서 스웨덴 경영자연합(SAF)과 스웨덴노동조합(LO), 그리고 정부의 3자 간에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쉐바덴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의 핵심 내용은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오너 일가의 기업 지배권을 인정하고 △대신 회사 이익금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한다는 내용이었다. 발렌베리는 주당 의결권이 10~1000개인 황금주(golden share)를 통해 높지 않은 지분율로 여러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살트쉐바덴협약이 모든 기업에 강제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개별 기업이 선택할 수 있다. 북유럽으로 확산된 이 제도는 스웨덴 상장 기업의 55%, 핀란드 상장기업의 36%, 덴마크 상장기업의 33%가 실시하고 있다.
▣ 공익재단을 통한 투명한 지배구조와 160년 성공 경영의 국민기업
발렌베리 기업은 160년을 이어오면서 적극적인 사회 공헌활동을 통해 스웨덴 정부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국민 기업이 됐다. 발렌베리 지배구조를 보면 그 정점에 발렌베리 재단이 있다. 발렌베리 재단이 중간지주사인 인베스터(Investor)와 팜(FAM)을 지배하고, 인베스터와 팜은 각각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창업주 일가라 해도 개인지분은 없고, 재단 소속 지분을 통해 그룹을 총괄하는 자리를 이어받는 구조다.
발렌베리 그룹이 외형적인 기업규모나 경쟁력보다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투명경영과 사회공헌을 강조하는 경영철학이다. 이것이 160년 동안 5세대에 걸쳐 소위 세습경영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지지와 사회적인 존경을 받게 만든 원동력인 것이다.
재단을 정점으로 하는 기업 지배구조는 전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포드, 덴마크의 칼스버그와 레고 등이 모두 재단을 통해 경영권을 물려받는 구조다. 이들 국가는 여기에 차등의결권 제도를 결합해 특정 가문을 대표하는 재단이 기업을 물려받는 구조를 공식화했다. 우리나라도 차등의결권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 중간지주사 23% 지분으로 50% 의결권 행사
ABB, 에릭손, 사브(SAAB), 일렉트로룩스 등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인베스터 중간지주사는 발렌베리 재단의 지분은 23%나 의결권은 차등의결권 제도를 결합해 50%를 보유하는 구조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단(공익법인)은 동일 내국법인(재벌)이 발행한 의결권 있는 주식의 5% 이하를 출연받을 때만 세금을 면제해 주는 상속·증여세법에 따라 이 같은 지배구조를 가질 수 없다. 이 이상 지분을 재단에 넘기면 증여세를 물어야 해 지분을 직접 물려주는 것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우수한 경영 역량을 갖춘 후손들을 육성하여 CEO나 이사회의장직을 맡도록 라여 산하 기업에 대한 리더십을 계승하고 있다. 2세에 대한 재산 상속은 개인 간에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찍이 재산을 재단에 헌납하여 직접적인 부의 세습을 지양하고, 대신 가문의 적극적인 주인의식 가치와 사회적 책임 수행 철학을 계승해 이를 바탕으로 리더쉽을 상속하여 지배권을 유지해온 것이다.
발렌베리 지배구조가 우리나라에도 통할 것이란 말은 제도와 문화가 다른 상태에서 속단할 수는 없으나, 발렌베리의 5대째 가업이 이어질 수 있는 힘은 창업자 가문의 숨결과 창업정신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주니어 회장은 “25년 전 휴대폰을 만들어 팔던 회사가 지금은 5G 통신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었다. 경영이 매우 어려웠던 당시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압박이 있었지만, 발렌베리 울타리 안에서 견딜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기업이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을 최고결정권자는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 자신도 기업의 장기 비전과 미래를 내다보는 치열한 고민을 늘 하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 후계자 선정 방식과 투톱 경영체제
발렌베리 기업 내에서는 자질 있는 창업자 6세대 후손 예비경영자들이 회사 일의 일부를 배우고 있다. 발렌베리 주니어 회장은 “후계자는 미리부터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들어와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이라며 “나 역시 발렌베리 계열사인 그랜드 호텔 등에서 일하며 가문에 관심을 가졌고, 시간이 흐르니 이 자리에 오르게 됐다”라고 말했다.
발렌베리 가문이 후계 경영자를 선택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발렌베리 가문은 CEO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창업자와 마찬가지로 △부모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마칠 것과, △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후계 경영자들은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또 부모의 도움 없이 세계적 금융중심지에 진출하여 실무 경험을 쌓고, 국제 금융의 흐름도 익혀야 한다.
발렌베리 경영의 또 하나의 특징은 '투톱 경영체제'이다. 한쪽은 금융, 한쪽은 제조업을 맡는 형태로 한쪽의 독단으로 그룹이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발렌베리그룹은 지주회사인 ‘인베스터 AB’와 은행인 ‘SEB’, 두 개사를 주축으로 구성돼 있다. 후계자 평가는 보통 10년 넘게 걸리며, 견제와 균형을 위해 2명을 뽑는다. 이렇게 선발된 두 명은 차례대로 산하 회사들의 경영진으로 참여하며 경영수업을 받는다. 최종적으로는 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 AB와 그룹의 모태인 SEB 은행의 전문 경영인으로 활동하다가 그룹의 후계자로 최종 발탁된다.
발렌베리 집단은 5세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수십 개의 상장, 비상장사를 거느린 거대 기업집단이 됐다. 대표기업으로 에릭손. 일렉트로룩스, 사브(SAAB) 등이 있다. 연 매출 250조 원, 그룹 소속 직원만 60만 명에 달한다. 발렌베리 주니어 회장은 창업자 가문의 숨결과 정신을 이어받아 계열사 간 투자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걸 비롯해 총괄 조정자로서의 대주주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 재단 이익금의 80%를 사회공헌에 지출
발렌베리 가문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발렌베리 재단에 들어오는 이익금의 80%를 사회공원 활동에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수십 개에 달하는 자회사들이 올려보낸 배당수익의 20%만 계열사 내에 재투자하고 나머지 전부를 과학기술, 의료, 대학 연구사업 등에 쓰면서 국가와 상생하는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이 연구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액수만 매년 2억4,000만 달러(약 2,700억 원)에 달한다. 2019년 동안 연구에 지원된 자금은 총 24억 크로나(SEK)에 달했다. 발렌베리 재단의 자금 대부분은 의학, 과학 및 기술의 기초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사회 과학과 인문학, 교육 및 고고학을 포함한 다른 분야에서도 상당한 보조금을 지원한다. 기업과 정부가 상생해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를 만든 스웨덴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아무튼, 삼성의 지배구조로 볼 때 삼성재단을 통한 삼성그룹의 지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발렌베리 왕국의 실질적인 주인은 가문의 후계자들이 아니고, 발렌베리 재단이라고 할 수 있다. 160년 동안 일군 부의 대부분을 발렌베리 재단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렌베리 후계자들의 재산은 50∼200억원 규모로 우리나라 재벌 2세들이 갖고있는 1조원 규모의 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그리하여 발렌베리가 스웨덴의 최고 부자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 스웨덴의 최고 부자는 가구회사 이케아를 소유한 잉바르 캄프라드다. 하지만 그는 스웨덴의 다른 부자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세금을 피해 스위스로 옮겨가 살고 있다. 또한, 액체 포장용 종이팩인 테트라 팩을 만든 루빈 라우싱 가문은 1980년대 스웨덴의 높은 세율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반면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에 남아 자신들이 일군 부를 공익재단에 기부해 사회에 환원하는 길을 선택했다.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철학은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한다. 발렌베리 가문이 세계 1,000대 부자 명단은 물론 스웨덴 100대 부자 명단에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재단 이익금의 80%를 사회에 환원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가 새겨볼 이야기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철학과 사회공헌 활동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참고해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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