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의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정책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교란 사태는 중국에 편중된 공급망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고, 주요국의 위기의식은 안보를 경제와 산업에까지 확장해 대중국 의존 축소에 나서도록 했다.
주요국의 공급망 정책은 크게 ▲전략산업 공급망 내재화 ▲자국 첨단기술의 중국 유출 제한 ▲노동·환경 이슈화로 압축될 수 있다. 우선 미국은 대규모 보조금 정책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친환경 제조시설을 유치하는 한편, 지원 수혜기업이 중국과 협력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했다. EU는 경제적 실익을 고려해 중국을 직접 자극하기보다는 ‘디리스킹 (de-risking)’을 명분으로 대중국 수입 의존도를 축소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과 호주는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에 적극 협력하며, 각각 반도체, 핵심광물 산업 부흥을 위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대외 변수에 따른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쌍순환 정책’하에 자국 내 독자적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에 주력하며, 특히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장악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경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외국투자기업에 대해 중국 증시 상장, 정부조달 시장 참여, 토지사용 혜택 등 투자지원책도 내놓고 있다. 중국산 원자재·소재·부품에 대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회사·합작사 설립 등의 방식으로 미국 시장 우회 진출을 시도하는 중국 기업도 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공급망 재편의 피해가 큰 나라로 우리나라를 꼽았다. IMF는 중국과 OECD가 동맹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프렌드쇼어링' 상황에서 한국 국내총생산(GDP)은 4% 가까이 감소한다고 추정했다. 주요국의 GDP 감소율이 2% 이하인 것에 비해 한국 피해가 큰 셈이다. 프렌드쇼어링 상황은 중국과 OECD 국가들이 서로에 대한 비관세 무역장벽을 강화하되, 다른 국가와의 교역은 제한하지 않는 환경을 가정한 것이다.
한편, 중국과 OECD가 서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를 상대로 비관세 무역장벽을 강화하는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상황에서는 한국의 GDP 감소율이 중국보다 클 수 있다고 IMF는 평가했다./리쇼어링 상황에서 OECD 회원국들의 대외 구매 의존도를 3%포인트씩 낮추는 경우를 가정했더니, 중국의 GDP는 6.9% 감소하고, 한국의 GDP는 10%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왔다. 공급망 재편이 우리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음을 IMF가 경고한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동남아시아도 GDP가 9.1% 감소하는 등 중국·OECD와의 관련성이 높고 무역 비중이 높은 개방경제형 국가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중국 경제가 개혁에 성공할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 경제 국가들을 중심으로 수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됐고, 동남아시아와 한국의 성장률 상승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5월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분석에서도 한국의 수입 취약성은 세계 1위였다.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 원료는 중국, 반도체 장비와 소재는 미국·일본·네덜란드에서 대부분 수입하는 등 주력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원자재를 몇몇 나라에 의존하고 있다. 그만큼 공급망 교란에 취약하다.
미국과 중국 갈등이 완화되면 피해가 줄겠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에는 상황이 상당히 어렵다. 미국은 최근 지난해 수출통제 조치를 한 첨단 반도체 장비나 인공지능(AI) 칩보다 사양이 낮은 AI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도 흑연 수출통제에 나섰다. 한국은 흑연 수입량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7월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제한에 이어 9월에는 비료용 요소 신규 수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중국 견제 목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첨단기술을 대상으로 투자 제한, 수출통제 조치 강화 등 추가 제재를 추진 중이다. 중국도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예고하고 있으며, 공급망 지배력을 강화하고 무기화함으로써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는 우리나라에 큰 위협인 만큼 공급망 다변화가 시급하다. 중국뿐 아니라 동맹국조차도 핵심 산업 분야에서 파트너인 동시에 경쟁자임을 명심하고 상생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공급망 질서 재편과 기술 혁신이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국제 규범 마련과 주도권 확대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디지털 권리장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IMF도 각국은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글로벌 공급망에 통합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각국의 공급망 주도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초격차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원천 기술 투자와 R&D 세액공제, 보조금 등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제3국과 기술·공급망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한국무역협회(KITA), 주요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과 중국의 대응, 통상리포트, 2023. 8. 23/ 매일경제, 관련 기사, 2023. 10. 22/ KIEF, 미·중 글로벌 공급망 경쟁과 중국의 전략, 중국 전문가포럼, 2023.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