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국가실패의 사례에 관한 특강이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사례 연구로 대구 수성시립도서관 지하 1층 시청각실에서 지난 6월 25일 개최되었다. 그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시장의 실패 (market failure) 란 경제활동을 자유시장기구에 맡길 경우에 효율적인 자원배분 및 균등한 소득분배를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를 총칭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기구하에서도 파레토 최적의 효율성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정부의 실패(government failure)란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정부개입이 오히려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저해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세계 1위 석유매장량 베네수엘라 국가가 왜 경제파탄 되었는가? 라는 내용을 가지고 설명한다.
경제학에서 정부실패 (Government Failure)란 국가가 경제정책을 실시하여 실패한 경우를 말한다. 보다 쉽게 이야기하면 국가실패의 경우이다. 베네수엘라는 과거부터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석유 시추에 본격적인 개발을 지연시켰다. 그러다가 1914~19171914~1917년까지 유전들이 발견되었고, 1922년부터 마라카이보 분지에서 하루 10만 배럴의 생산량이 생산됨으로써 본격적인 산유국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28년에는 세계 2번째의 석유수출국이 되었다. 매장량은 약 3,000억 배럴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농업에 대한 제대로 된 기반도 없었고, 제조업 분야는 물론 사회기반시설 자체도 갖춰지지 않은 못 사는 나라였다. 오직 소수의 부유층들이 토지를 독점하여 행복을 누리는 빈곤국가였다. 그러한 국가에 기름이 생산된 것이다. 나라는 순식간에 빈곤문제를 벗어나 주요 석유 수출국이자 생산국이란 타이틀을 걸고 남미의 최대 부유국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7,424달러로 세계 4위였다. 1970년에는 남미에서 가장 잘 살았고, 1인당 소득이 스페인, 그리스, 이스라엘보다 높아 세계 가장 부유한 나라 20위 안에 들었었다.
제1차 오일쇼크로 1973년 유가가 4배나 상승하였고, 이러한 석유파동으로 전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는 동안 베네수엘라는 막대한 수입을 거둬들였다. 1970년대에는 1973년 제1차 석유파동과 1978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크게 올라 오일머니로 많은 달러가 들어오게 되었다. 남미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우연히 발견된 석유로 이뤄진 행운이었고, 국가는 이 막대한 수입을 통해 무분별한 복지정책과 지출로 소비했다.
그 후 1981년부터 멕시코의 유전 발견을 시작으로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하여 베네수엘라는 서서히 몰락의 길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국가의 방만한 재정지출에 이미 달콤한 맛을 본 국민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빈곤한 삶으로 급속히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330억 달러의 빚더미에 앉게 되고, 1989년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사태가 되었다. 대부분의 물가는 상승하고, 나라는 허리띠를 쥐어 짜 긴축을 벌이게 되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넘어가고 결국 사회 혼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 1998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당선으로 그 하락에 페달을 달게 되었다. 좌파성향의 우고 차베스는 오히려 방대한 예산계획을 실행하여 나라 전반의 복지정책을 위해 석유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몽땅 투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상복지에 사람들은 환호하였다. 국민들은 게으르고, 국가가 주는 복지혜택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 압박으로 인해, 해외로 떠나게 되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런 가운데에서도 국민의 목소리를 따라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고, 이에 따라 물가가 크게 상승하였으며, 강력한 가격 통제를 실시했다. 이런 순서로 산업기반은 파탄 나게 되고,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2014년 이후에도 유가는 계속 하락하였고, 생산량마저도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기본적인 식료품마저 부족한 상황 속에 정부는 급상승하는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나섰지만, 부족한 식료품을 뒤에서 비싼 가격에 되파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국민들의 가게 살림은 더욱 더 힘들어지게 되었다. 국가의 빚은 늘어가고, 이를 갚은 현금은 부족하고, 국민들은 기본적인 병원 치료까지 받지 못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한때 GDP가 세계 4위에 달하던 베네수엘라는 2016년 기준 102위, 2019년 133위로 떨어지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하 생략
아르헨티나는 남미 대륙의 최남단부에 위치하며, 남미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국가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러시아, 미국, 브라질, 캐나다,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인도에 이어 8위의 넓은 면적을 가진 국가이다. 공교롭게도 남미에서 축구를 잘하는 국가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은 모두 외채가 높은 국가들이다. 아르헨티나의 국토 면적은 279만 km2(한반도의 12.6배)로 세계 8위에 해당하며,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4,539만 명으로 추정된다. 세계 3대 곡창지대의 하나인 팜파스 대평원을 보유하고 셰일가스(매장량 규모 세계 2위), 리튬(매장량 규모 세계 3위) 등 광물자원도 풍부한 자원부국이나 원자재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아 기후 및 원자재의 국제가격 변동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약 100년 전인 191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잘 살았다. 미국・캐나다・호주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5대 부국으로 불리었다.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지하철이 개통된 것이 1913년인데, 일본 도쿄지하철은 14년 뒤인 1927년에 개통되었다. 이러했던 아르헨티나가 무너진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이다. 아르헨티나는 1957년 IMF에 가입한 이후 작년까지 30번이나 IMF 구제금융을 받았다고 한다. 2001년과 2014년에는 돈이 없어서 빚을 못 갚는 디폴트에 빠지기도 했다. 한 국가가 대중영합주의에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각종 수당과 보조금 등 공짜에 익숙해진 국민이 개혁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국가가 아르헨티나이다.
그리하여, 아르헨티나는 지난 40년간 8차례 국가부도를 경험했고, 2020년 들어서 통산 9번째 디폴트를 경험하였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요인은 1차 산업 위주인 산업/수출구조와 20세기 중반의 정치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2016년에도 가장 큰 수출 품목이 대두 부산물(16.75%)과 옥수수(7.11%), 콩기름(7.07%), 대두(5.73%) 순으로 농산물에 편중되었다
1946년 아르헨티나에서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페론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그는 아르헨티나 사회의 막강한 노동조합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반기업정책과 친노동정책을 펼쳤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매년 20%씩 증가시켰다. 2차 대전 종료 직후 전후 복구 특수로 아르헨티나산 농축산물의 수요가 크게 늘자 경제성장률이 크게 상승하면서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이러한 풍요를 복지지출에 거의 다 사용하고,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의 발전을 시도하지 못했다. 퍼주기식 복지에 국가부채와 외채가 급증하고, 국가경쟁력은 크게 떨어졌다. 무리한 사회복지비 지출로 재정적자를 보이자 외국자본을 빌리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은 매년 20%씩 증가시켰고, 이에 따라 물가가 더 이상 올라가게되니 화폐발행량은 증가하고 화폐가치는 떨어지게 되었다. 실질구매력이 떨어지면서 무역적자와 경기침체로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임금이 크게 오르니 국내 영업을 접고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이 늘자, 실업대란이 발생하였다.
결국, 페론 대통령은 1955년 쿠데타로 실각하고, 아르헨티나는 경제난으로 구제금융과 긴축재정을 반복하는 경제 불안정의 악순환에 빠졌다. 이후에도 정치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목적으로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03년에서 2015년까지 키르치네르 대통령 부부는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좌파적 페론주의로 국민의 세금으로 서민들의 지갑을 채워주며 집권을 유지했다. 서민들에게 각종 지원금을 주고, 연금수급자를 2배로 증가시키는 등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을 장기간 추진했다. 특히 2003년 230만 명이던 공무원 수가 2014년에는 390만 명으로 69.6%나 증가시켰다. 연금수급자도 360만 명-->800만 명으로 늘리자 총인구 4,300만 명 중 20%에 달하는 국민이 연금을 받아 놀고먹게 되었고 당연히 재정적자가 심각해졌다. --이하 생략
참고 자료; 전체 내용 동영상; 이춘근교수방송에서 청취 가능
주요국 국가실패 사례 특강!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국가실패 사례! 나라사랑아카데미, 대구수성시립도서관 시청각실! (2025년 6월) [이춘근교수방송 475회]